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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영양

비타민이 풍부한 김치 김치는 채소 생산이 어려운 겨울철 비타민 A, B, C 등을 비롯하여, 그 부재료가 지닌 다양한 영양성분을 공급하며 또한 인체의 생리기능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는 종합보양식품이다.

김치는 채소가 주체가 된 저칼로리 식품으로 식이성 섬유를 많이 함유하고 있으며 장의 활동을 활성화하면서 체내의 당류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므로 당료병, 심장질환, 비만 등 성인병 예방 및 치료에도 도움을 준다.

김치가 숙성함에 따라 증가하는 유산균은 요구르트와 같이 장내의 산도를 낮춰 유해균의 생육을 억제 또는 사멸시키는 정장작용을 가지고 있다.

김치에는 수산물 절임도 폭넓게 사용되어 쌀밥 중심의 식생활에 부족하기 쉬운 아미노산을 공급함으로써 영양상의 균형을 유지하여 준다.

 

김치의 전래

김치라는 말의 유래 김치라는 말의 기원은 "채소의 소금절임"을 의미하는 「沈菜」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沈菜」→「딤채」→「김채」→「김치」로 변화하면서 현재의 「김치」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김치에 관한 첫 기록은 2600 - 3000년 전에 쓰여진 중국 최초의 시집, <<시경(詩經)>>에 나와 있다. “밭 두둑에 외가 열렸다. 외를 깎아서 저(菹)를 담자”는 구절이 있는데, ‘저’가 염채(鹽菜), 즉 김치의 시조(始祖)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는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가면서 ‘저’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한말(漢末) 경의 사전인 <<석명(釋名)>>에도 ‘저’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석명>>에는 김치에 대해, 채소를 소금에 발효시키면 젖산이 생성되고, 이 젖산이 소금과 더불어 채소의 짓무름과 부패를 막는다”라고 풀이했다. 여기서 ‘저’가 채소를 젖산발효시켜 저장해 온 산미가공식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의 식품에 관한 서적들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우리 문화의 절대적 영향을 받은 일본 문헌을 통해 그 시대의 식생활을 가늠할 수 있다.

일본의 <<정창원문서(正倉院文書)>>나 평안시대(平安時代, 900 -1000년 경) 문헌인 <<연희식(延喜食)>>에 의해 소금, 술지게미, 장, 초, 느릅나무 껍질, 대나무잎 등에 쟁인 절임류가 삼국시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지 외 파 미나리 순무 생강 산초 등을 소금 절임했고, 외나 생강으로 술지게미 담금도 했으며, 순무 외 동아 가지 등을 된장이나 간장에 담그기도 했다.

또 순무나 동아를 식초 절임〔醋沈〕하거나, 채소를 쌀겨와 소금에 쟁인다는 기록도 있다. 쌀겨로 담그는 김치는 500년 경의 중국 식품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 에도 나와 있다.

<<제민요술>>에는 30여 종의 작저법(作菹法)’이 설명돼 있으며, 재료로 흔히 쓰인 것은 배추 무 순무 아욱 외 달래 죽순 동아 목이버섯 등이었다. 이들을 소금으로 절이거나 끓는 물로 숨죽여 식초에 담그기도 했다. 소금으로 절인 것은 익힌 곡물(밥이나 죽 등)이나 술지게미 누룩 등을 넣어 삭힌다고 나와 있다.

일본은 덥고 습하기 때문에 쌀가루로 담근 김치가 쉽게 산패하므로 쌀겨, 곡물 지게미와 껍질 등을 많이 썼다. 그래서 일본 김치의 대표인 단무지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단무지의 원조는 ‘조강지’라는 것으로, 그 말의 기원이나 뜻은 분명하지가 않다. 일본의 옛 사서(史書)인 <<고사기(古事記)>>에 오진텐노〔應仁天皇〕시대에 구다라징〔百濟人〕인 ‘조강’이 건너와서 누룩으로 술 빚는 방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조강지는 옛날 중국에서 백제로 전해졌고, 이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당시 백제에서는 조강지뿐만 아니라 <<제민요술>>에 나오는 다양한 김치들을 먹었으며, 이는 삼국 모두 같은 경우였던 것으로 여겨진다.